오데트와 오딜 1인 2역 맡은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박슬기
백조·흑조 둘 다 내 안에 “팽팽한 싸움 즐겨요”
백조·흑조 둘 다 내 안에 “팽팽한 싸움 즐겨요” - 조선일보 (chosun.com)
백조·흑조 둘 다 내 안에 “팽팽한 싸움 즐겨요”
백조·흑조 둘 다 내 안에 팽팽한 싸움 즐겨요 오데트와 오딜 1인 2역 맡은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박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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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트 공주는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려 있다. 숲속 호숫가에서 그녀를 보고 반한 지그프리트 왕자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하지만 이튿날 무도회에서 악마 로트바르트의 딸 오딜이 왕자를 홀리자 오데트는 절망한다.
국립발레단이 오는 12~16일 예술의전당에서 3년 만에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다. 웅장한 차이콥스키 음악과 섬세한 백조의 날갯짓이 일렁이는 클래식 발레.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박슬기는 가녀린 오데트와 욕망의 오딜, 1인 2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어려운 기술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날갯짓하랴 발끝도 잘게 움직이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요. 백조(오데트)와 흑조(오딜)가 완전히 다른 무용수처럼 보인다면 성공이죠.” 지난달 27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박슬기를 만났다.
–관객이 보기에는 우아한 백조인데.
“다리를 움직이면 다리가, 팔을 움직이면 팔이 아파요. 그런데 팔다리를 같이 사용할 땐 어디가 아픈지 몰라요. 하하.”
–2막에서 더 힘을 쏟아붓나요.
“하이라이트가 2막에 있어 그렇게 보이겠지만 1막에서 오데트가 서정적으로 춤출 때 체력을 더 소모해요. 힘이 좋다는 이유로 제 별명이 한때 ‘힘슬기’였는데, 2막보다 아다지오 선율인 1막에서 땀이 더 많이 나요.”
–슬픔을 머금은 오데트와 요염한 오딜 사이를 왕복해야 하는데.
“백조는 섬세한 춤을 요구해요. 흑조는 빠른 회전 등 임팩트 있는 동작이 많고요. 음악도 1막은 서정적이고 느린데 2막은 강하고 밝고 빨라집니다. 1막과 2막 사이 휴식 시간에는 의상 갈아입고 분장하고 백조에서 흑조로 환승하느라 바쁘죠(웃음). 흰색은 처연하지만 아름답고 검은색은 어둡지만 매혹적이에요. 두 인물을 다 연기하는 게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실제 박슬기는 어느 쪽에 가깝나요.
“둘 다 아니에요(웃음). 여리여리하지도 처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혹적이지도 않아요. 남편에게 물어보니 발레 ‘고집쟁이 딸‘의 여주인공이래요.”
–입단 초기에는 24마리 백조(군무)도 했나요.
“그럼요. 3마리 백조, 4마리 백조, 진짜 많은 역할을 경험했어요. 24마리 백조 중 하나일 땐 날갯짓을 열심히 했더니 선생님이 음악을 끄시곤 ‘박슬기, 니가 오데트니?’ 하면서 혼을 내셨습니다. 앞과 좌우를 살피며 줄을 잘 맞춰야 하고 다른 백조들과 팔을 통일감 있게 흔들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지요.”
–’오데트, 따내고 말 테다’ 하는 오기도 생겼겠어요.
“그땐 주눅이 들었지,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어릴 때라 무조건 열심히 추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혼자 튀면 안 되는 거였지요. 그래도 오데트 데뷔까지 몇 년 안 걸렸습니다. 이제는 저한테 쏟아지는 기대, 감투(수석 발레리나)의 무게를 즐겁게 견디고 있어요.”
–사랑 이야기는 많은데 ‘백조의 호수’만의 특징이라면.
“왕자가 착각을 해서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발레 작품은 이게 유일해요. 마지막엔 진실을 깨닫고 길을 찾아가지요. (이런 스토리를 좋아하는지 묻자) 해피엔딩이니까요. ‘백조의 호수’는 흑백 대비가 뚜렷해요. 남자는 왕자와 악마 로트바르트, 여자는 백조와 흑조.”
–그런데 공연 앞두고 닭을 잡는다고요?
“아하하. 공연 전날 저녁마다 치킨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반반으로 한 마리를 주문해 ‘열심히 뛰어야 하니까’ 다리 두 개를 먹고 (중력과 싸워야 하지만) 날개는 남편에게 양보합니다. 선호하는 치킨은 ‘클래식하게’ 프라이드(웃음).”
–인간 박슬기와 무용수 박슬기의 매력이라면.
“발레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요. 극장 밖에선 허당이에요. 휴대폰이나 전자 기계 사용에 서툴고 제가 만지면 오류가 납니다. 그런데 무용수 박슬기는 고정된 이미지가 없어 변신이 자유로워요. 뭐든 할 수 있는 쓸모, 그게 매력 아닐까요?”
버스정류장에서 춤추다 행인과 부딪힌 적이 있을 만큼 배역에 깊이 빠져든다는 이 발레리나는 “이번 무대는 백조 박슬기와 흑조 박슬기의 팽팽한 싸움”이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용수, 여운이 남는 무용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